자유 게시판

내 입에 달콤한 것

무던은근 2026.06.12 01:56 👁 103
90년대 말쯤인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이란 감독 영화가 살짝 유행했던 적이 있었어. 나도 그때 좀 좋아했던 작가라 체리향기,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나무 사이로 등을 봤었지. 기본적으로 웰메이드영화를 좋아하고 몰입감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취향만 맞으면 독특한 관점과 색채도 있는 영화도 좋아해 키아로스타미 작품중에서 가장 좋아한 작품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체리향기! 내용은 이래. 어떤 남자가 차를 타고 흙길을 다니며 자기를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어. 이란 산이 다 이런가 싶은 게 나무는 별로 없고 흙산에 흙먼지 날리는 길이 영화 거의 종반까지 쭈욱 이어지지. 산에서 폐비닐을 모아서 공장에 파는 사람을 만나서 자기일을 도와주면 큰돈을 주겠다고 했는데 거절당해 앳띤 군인을 만나서 부탁을 했는데 남자의 부탁을 듣고는 그 군인은 빤스런 길가다가 신학생(물론 이슬람)을 만나서 드라이브를 하자고 차에 태워 그 신학생은 아프간에서 온 유학생인데 여름에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 학비를 마련해서 근근히 살아간대 남자는 자기의 부탁을 이야기해. 오늘밤 자신은 수면제를 드립따 먹고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누울 건데, 다음날 아침에 두번 부르고 자기가 일어나지 않으면 흙을 덮어달라고... 그러면 꽤 큰 돈을 보상으로 주겠다는 거지. 그러면서 자기가 죽을 예정인 장소까지 와서 미리 파놓은 구덩이를 보여줘. 신학생은 자기 육신을 스스로 죽이는것도 살인이라며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해. 남자는 설교를 듣으려는 게 아니라면서 자기는 고단한 인생을 마치기로 했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 내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당신이 내 고통을 알 수는 있어도 느낄수는 없을꺼다. 자살은 용서받지 못할죄일테지만 불행하게 사는 것도 죄야. 이 일을 해주면 하늘이 복을 내려줄뿐만 아니라 여름에 일을 안해도 될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꺼라고 꼬드겨봤지만 신학생은 거절해. 이렇듯 남자는 차를 몰고 다니며 만나는 여러 사람에게 여기 분홍이들에게 마냥 ok를 보내지만 되돌아오는 건 무응답 또는 거절메세지 뿐이었지. 그러다가 나이 많은 노인을 태우게 돼. 노인에겐 아픈 아들이 있었고 치료비가 필요한 상황이었어 그렇지만 노인은 남자를 진정으로 도와주고 싶었지 무슨 일때문에 그러는지 말을 해달라. 그래야지 도와줄 수 있다.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세상에 남아있을 사람이 없을거다. 라고 했지만 남자는 자살하려는 이유가 뭔지 상처가 뭔지 얘기를 하지 않아. 노인은 남자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말해.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남자에게 들려줘 자기가 결혼할 무렵 온갖 고난이 있었대 너무 힘들어서 자살하려고 새벽에 밧줄을 차에 실고 적당한 나무를 찾아서 밧줄을 나뭇가지에 걸려고 했는데 걸리지가 않아서 나무꼭대기까지 올라갔대 그런데 뭔가 물컹한게 잡히더래 그나무가 체리나무였어 열매 하나를 먹고 두개를 먹고 세개를 먹으니까 동이 트기 시작했지. 그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대 그때 등교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어. 아이들이 노인에게 말했대 '나무를 흔들어 주세요.' 노인은 나무를 흔들었고 아이들은 땅에 떨어진 체리를 먹었지 그모습을 보고 노인은 큰 행복감을 느꼈대. 그리고는 자기도 체리를 주워서 집에 가서 자기도 먹고 아내에게도 먹였다는 거야. '체리가 내 생명을 살렸지'라고 말했어. 남자는 노인의 얘기를 듣고 시니컬하게 말했어. '그니까 당신은 체리를 먹고, 부인도 체리를 먹고 그러자 모든게 해결되었다는 건가요?' 노인이 대답했어 그게 아니야. 내가 변햇던거야. 세상사람들은 다 고민이 있어. 세상은 다 그런거라고. 재밌는 얘기 해줄께 터키 사람이 의사를 찾아가서 말했어 손가락으로 몸을 대면 아파요. 머리를 대도 아프고, 다리를 대도 아파요. 그러자 의사가 진찰을 끝내고 맗했대 '손가락이 부러졌군요' '다른데 문제가 없으니 생각을 바꿔봐요.' 노인은 남자가 생각을 바꾸길 바라면서 이야기를 해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은 안보나요? 노을을 생각해봐요 세상에 살고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은 죽고싶어하다니. 샘물을 마시고 싶지 않아요? 사계절을 생각해봐요. 친구로서 부탁을 합니다.생각을 바꿔봐요. 남자는 아무말 없이 운전하고 노인이 근무하는 박물관에서 노인을 내려줘. 노인은 '내일 새벽에 두번 부르겠오'. '당신이 대답하면 손을 잡아 일으켜주겠오'라고 말하며 남자와 작별인사하고 차에서 내리지. 노인이 내리고 돌아가는 남자의 눈에는 저멀리 노을도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멀리 운동장에 어린 아이들도 보여. 남자는 박물관으로 되돌아가서 노인에게 부탁을 해 '내일 아침에 오실때 돌멩이 두개를 가지고 저한테 던져주세요.' 노인은 '돌멩이 세개를 던질께요' 라고 대답했어. 남자는 떠나려다 다시 돌아서서 다시 부탁해 '제 어깨도 흔들어주세요 그냥 잠든거일 수도 있으니' 그리고 밤이되자 남자는 구덩이 누웠고 화면은 검은 구름이 지나가는 달을 비추면서 영화가 끝나... 키아로스타미 영화가 좀 이래. 지루할 수 있는 영화고, 사건이나 스토리 중심이 아니야. 화면도 롱테이크를 많이 쓰고 자전거도둑과 같은 네오리얼리즘이란 장르에 속하는 영화인데. 이게 뭐냐면 찐 레알을 추구하는 영화야. 현실성을 위해서, 배우도 거의 안쓰고 현지인을 데리고 연기를 시켜. 대사가 딱 정해진 대본도 없는걸로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사건이 중요한게 아니라 존재가 중요하다고 봐. 인간이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걸 깔고 가는거지.. 그렇찮아, 절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치자 장례식장에서 같이 울어줄 수도 있겠지 친구의 표정을 보고, 자기 주변의 죽음의 경험을 떠올리며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슬픔을 똑같이 느낄 수 없잖아? 그런데도 사람들은 공감이나 교감을 바라곤 하지. 하지만, 어쩌면 공감이란, 상대방의 표정이나 반응을 보고 느끼는 내 감정이 아닐까? 고런 관점에서, 관객은 남주가 왜 죽으려고 했을까 하고 사연을 쫓지만 이 영화는 어떤 사연으로 죽으려고 했는지가 중요한게 아니야. 죽을만큼 힘든 상황 놓여진 설정자체가 이영화에선 중요한 거였지. 그상태에서 줄거리가 뭔지 답을 풀어주는게 아니야. 남자가 구덩이 누워있는 장면에서 영화가 끝나는것도 열린결말 그런게 아니란 말이지 은근슬쩍 질문을 스크린 바깥에 있는 관객에게 밀어주는게 이 작가의 방식인거지 그러니까, 남자가 아침에 죽었는지는 모르는게 현실적인 거지. 왜냐면 이 영화를 볼 수도 있는 절망의 구덩이에 누워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체리,노을,하늘 등등에 대한 이야기니까. 아침이되면 누구는 일어나고 누구는 일어나지 못하겠지 그리고 남자가 어떤 사연으로 절망에 빠졌는지 이야기할 수 없는거야. 그건 영화를 보는 사람들마다 사연이 다르잖아. 그리고 그게 중요하지도 않고. 고통속에 있는 사람이면 남자가 하는 말을 이해할꺼야 당신은 내 고통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느낄 순 없다. 줄거리? 스크린 밖에 관객들이 각자 자기 스토리를 만들어가야지. 카메라도 별로 움직이지 않고 정적으로 잡거나 자연이 배경이 되게 넓게 찍은 화면을 주로 잡아. 졸릴 수도 있을 만큼 잔잔한 영화인데 형식적으로는 파격적이지. sf영화, 카메라무빙이 현란한 영화, 떡밥던져주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영화는 하도 많잖아. 아무리 파격적인 내용을 다뤄도 스크린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 근데 이영화는 스크린 밖에 관객들에게 설정을 던져주고, 밑도끝도 없는 희망포르노가 아닌 달콤함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면서 스토리는 관객 너희들이 각자 쓰라고 하는 거야. 마음에 들었던 부분 3가지는 화면 배경이 종반까지 흙빛 산, 흙먼지였다가 노인이 남자 마음을 돌리러 열심히 설득하는데 남자는 묵묵부답이었어. 그런데 배경은 우울한 잿빛 풍경에서 알록달록한 나무가 보이고 노을이 비춘다든가 아이들이 노는모습이 보인다든가. 색채가 입혀진 풍경으로 슬그머니 변했다는 거지. 어쩌면 남자가 지나왔던 처음부터의 길부터 알록달록한 풍경도 있었겠지. 근데 카메라는 회색빛만 배경으로 잡았단 말이야. 그 배경이 누구의 망막에 비친 시점이었을까를 생각해봤을때 이 감독의 dmsrms한 스타일이 내 취향이었던거 같아 두번째는 노인의 태도 남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하지만 설교하지 않아. 이게 진리다 라고 이야기 하지 않아. 남자가 끝내 자살을 선택한다면 그거대로 존중하려고 해. 어른 코스프레를 하지 않고, 어른으로 말하는 게 이런게 아닌가 싶어 세번째는 이게 원제를 직역하면 체리의 맛이야.. 근데 이렇게 제목을 정하면 애로영화같을까?. 아마도 어감상 체리향기로 의역한거 같어. 영화란 보통은 스토리니까 우리는 영화를 보게된 이상 줄거리를 관성대로 쫓게되잖아. 내막이 뭔지 궁금하고 근데 이 영화는 거기에 대해 설명을 안해줘. 왜냐면.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애초부터 관객에게 답을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주는 거지. 절망과 고통속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잘될꺼야. 너의 아픔을 공감해. 이런게 가장 필요한 거일까? 뭐 위안이 될 수도 있겠지. 한조각의 따스한 말로 한알의 진통제 효과를 얻지만 근원적인 통증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어. 아무튼 말이지. 어쩌면 고통스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내눈에 반짝이는 게 내 시야에 없는게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옛날에 독립투사들 중에 혹독한 고문을 다 이긴 사람들이 변절한 이유가 물한모금, 식사 한끼 같은 자잘한 쾌락이었대 내말은 고통도 위력이 쎄지만 달콤한 것의 파괴력이 생각보다 쎄다는 거야. 나도 마음이 절망과 분노로 가득찬 순간들이 있었어. 뭐 누구나 다 그런적 있을꺼야. 그래서 이런 말 하는 것도 쪽팔리고 남사스럽다. 상황보다도 마음이 그랬던 거지. 하여간 인생 뒤집어져서 한바퀴 구르다보면 낙관적이 되는거 있잖아. 온전한 세상이 폐허가 되어가는게 두렵지. 이미 세상이 폐허라면 아니 원래 세상이란게 그런거라면 페허인게 두려울까? 오히려 그속에서 내눈에 반짝이는거 찾고 싶고 내입에 달콤한거 찾고 싶은거 아닐까? 진정으로 아름다운 일출을 보길 원한다든가 붉게 가슴을 때리는 노을을 보길 원한다면 멀리 다녀와도 되고 아무데도 가지 않아도 돼. 해는 어디서나 뜨고 지니까. 가끔씩 나는 이영화를 생각해 그리고 스크린 밖으로 슬그머니 던져진 질문을 떠올리곤 하지 지금. 내입에 달콤한 것은?

댓글 10

  • 라직스2026.06.12 03:55

    무던은근님 팬 왔다감..

  • 라직스2026.06.12 03:56

    오늘 잠 다 잤음.. 가슴이 먹먹하잖어 사람 울게 만들고…

    무던은근2026.06.12 10:49

    @라직스나란 남자;; 여자를 울리게도 만들고 잠 못들게도 만드는 남자인건가?

    라직스2026.06.12 12:01

    @무던은근미각을 잃은지 몇년되었는데… 미각을 찾던가 아님 이대로 그냥 살겠다 둘중에 결정을 빨리해서 떠날려고 했었어요 (내 문제를 여기서 알았음 ㅋㅋㅋ) 그런데 무던님이 훅!!!! 자극 주셨음 가끔 이렇게 좀 던져주세요~ 빨리 안나가길 다행이였네요 ㅎㅎ

    무던은근2026.06.12 14:08

    @라직스그랬구나~ 난 연애는 피곤해서 할 생각없지만 굳이 떠날 생각도 없는데. 🤔

    라직스2026.06.12 15:49

    @무던은근머….머신는데?????

  • 느티나무 아래2026.06.12 06:38

    나 자신에게 계속 질문해봅니다. 내 눈에 반짝이는 것은?

    무던은근2026.06.12 10:54

    @느티나무 아래큰거말고.. 자잘하게 반짝하고, 순간 눈을 즐겁게 하는 걸 찾다보면 하나씩 연쇄적으로 보이실 수도.

  • 찐팡2026.06.12 08:48

    아름다운 아침 선물 감사. 영화를 본거보다 더 감동

    무던은근2026.06.12 11:02

    @찐팡맛있으면 맛있다 하고, 바람이 쾌적하면 시원하다 하면 되는건데. 그 쉬운게 항상 어렵네요. 답을 구하는게 어렵다면 문제가 잘못된거다. 올바른 문제는 항상 간단한거다. 그리 생각하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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